사람 살기 좋은 땅, 함창

사람 살기 좋은 땅

함창은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입니다. 소백산을 타고 내려온 백두대간이 월악산과 속리산으로 이어지며 서쪽으로 충청도, 동쪽으로 경상도를 나눕니다. 상주는 속리산의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함창은 상주에서도 북쪽입니다. 문경과 가까워 함창 사람들은 상주 시내보다 문경의 점촌 시내를 자주 왕래하는 편입니다.

지금은 인구 대부분이 대도시에 몰려 삽니다. 도시에 일자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많지 않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어떤 곳을 선호했을까요? 사실 답은 뻔합니다. ‘사람 살기 좋은 곳’에 살았겠지요. 농사지을 너른 들이 있고, 강을 끼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산을 병풍처럼 둘러 외적을 방어하기 쉬운 곳이 살기 좋은 곳이었을 겁니다.
함창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함창은 아주 오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령가야’의 도읍지가 함창이었습니다. 보통 ‘가야’하면 남해안의 김해 일대를 떠올리는데, 연맹 국가였던 가야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세력권이 상주, 문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고령가야의 왕릉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가야의 퇴조와 함께 함창은 신라에 편입됐고, 이후 고령군, 함녕군으로 불리다 고려 현종 때 ‘함창군’이라는 명칭이 굳어졌습니다. 20세기에 함창은 상주시에 편입돼 상주시 함창읍이 됐습니다.

‘농사 잘되고, 교통 편리한 곳’이어서 예부터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경상도 (慶尙道)는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앞글자를 딴 것입니다. 상주에는 조선 중기까지 지금의 도청인 경상 감영이 있었습니다. 영남에서 서울로 오가는 영남대로도 상주를 지나갑니다. 낙동강은 영남 지역에 물자가 돌게 하는 주요 수운로였습니다.

전국 유일의 명주전

농사가 잘되고 교통이 편리하니 항상 물자가 풍부했기에,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불렸습니다. 삼백은 말 그대로 ‘세 가지 흰 것’이라는 뜻인데, 쌀, 누에고치, 곶감을 말합니다. 중세까지 산업의 핵심이 됐던 산물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가 충청도를 지나 상주 남쪽의 김천으로 돌아갔지만, 상주를 지나는 경북선 철도를 별도로 부설한 것만 봐도 상주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함창도 함창역을 중심으로 상업 시설들이 발전했습니다.
상주의 ‘삼백’ 중 함창은 명주로 유명했습니다. 전국의 오일장 중 유일하게 명주전이 설 정도로 함창 명주는 유명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베틀이 있어 길쌈해서 명주전에 내다 팔았고, 전국의 비단 장수, 한복 장수들이 장날이면 함창으로 모여들어 북적였습니다. 치열한 판매 경쟁이 이뤄지다 보니 명주 짜는 기술도 발전했고, 옷감 좀 안다는 사람들은 함창 명주를 최고로 쳤습니다.

천연섬유의 메카, 세계와 통하다

1970년대 이후 의류 산업이 대형화·대량화·화학 섬유화 되면서 명주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지만, 함창은 고집스럽게 전통적인 명주 산업의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 21세기 들어 함창이 새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화학섬유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고 천연섬유로서 명주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된 것이죠.
함창에는 2013년 함창명주박물관을 비롯한 명주테마 파크가 들어섰고, 2014년에는 마을 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옛것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아트로드’가 설치되는 등 명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산업화, 도시화 되면서 ‘사람 살기 좋은 곳’의 기준이 바뀐 것 같지만, 수천 년 역사의 힘은 간단치 않아 보입니다. 인류 문명의 태동과 함께했던 명주가 화학 섬유의 시대에 오히려 주목을 받듯이, 수천 년 이어져 온 시골의 작은 마을이 도시 문제로 시름 하는 우리에게 ‘사람 살기 좋은 곳’은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다시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함창 방문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