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창 명주 배내옷

교촌리 여느 집이 그러하듯 민숙희 선생도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베틀에 앉아 명주 짜는 것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가 대구로 유학 간 오빠들 뒷바라지한다고 떠나고, 베틀을 물려받은 고모가 시집가서 떠나자 자연스럽게 베틀에 앉았다. 5대째 명주를 짜왔다는 허호 선생, 4대째 명주를 짜왔다는 민숙희 선생은 결혼했고, 부부가 함께 명주를 짰다.

허호, 민숙희 부부의 최대 무기는 ‘성실성’과 ‘신뢰’였다. 종일 명주를 짜 명주전이 서는 날이면 자전거에 싣고 가 내다 팔았다. 좋은 명주는 비단장수들의 눈에 띄는 법. 허호 선생의 명주를 한 번 받아간 사람들은 계속 허호 선생의 명주를 찾았다. 허호, 민숙희 부부는 주문 납기를 맞추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고, 단골은 계속 늘어갔다.